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미니즘/비판 및 논란 (문단 편집) === 사회적 탄압 === > 페미호 노젓기도 턱끝까지 숨차오르는데 가로막는 암초에 이젠 다른 배 노까지 저으라고 압박하네요. '''자기 노는 자기가 젓는 걸로...''' 2017년 3월에는 페이스북 "꼴빼미" 라는 페이지에 올라온 한 장의 그림이 다시 논란이 되었다. 이는 '''진보의 핵심 가치인 '약자들과 소수자들의 연대의 힘'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여겨져서 큰 파장을 불러왔으며, 이후 네티즌들의 논쟁 끝에 "장애인이나 트랜스여성, 게이들 역시 남성으로 살아 본 경험이 있는 이상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특혜를 받으며 살아왔고 여성혐오를 했으니 당신들과는 연대를 하지 않겠다, 다른 모든 사회적 약자들 사이에서도 여성이야말로 진정 최약자다" 의 주장이 가시화되었다. 그러잖아도 여성운동과 퀴어운동을 하나의 이론체계로 포괄하기 위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교차성]] 담론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에서[* 예컨대 흑인 여성들은 흑인 인권 운동을 할 때에는 흑인 남성들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고, 여성 인권 운동을 할 때에는 백인 여성들에게 섞여들지 못하고 겉돌아야만 했다. 오늘날의 소수자성 담론은 이런 문제들을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논점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야말로 찬물을 뿌려버린 셈. 심지어 이 상황에서 일부는 "이것 봐라, 장애인들이나 성소수자들은 그나마 당신들에게 옹호라도 받지만 우리는 또 다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신들에게 공격받고 있다" 고 피해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가지 웃기는 점은 페미니스트들이야 말로 "[[흑백논리|우리와 함께하지 않으면 전부 여성혐오자이며 성차별주의자다]][[http://h2.khan.co.kr/201608021020001|#]]"라며 연대를 강요하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본인들이 다른 이들에게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방관자라느니 가해자라느니 짖어대던 사실은 모른 척하고 마치 다른 집단이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연대를 요구해온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자기 노는 자기가 저을 것 같으면 페미니스트들부터가 다른 집단에게 공감능력이 낮다는 둥, 페미니스트 아니면 전부 여성혐오자라는 둥의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일부 논자들은 국내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 소위 "진보씹치" 담론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즉 과거 [[운동권]]으로 대표되었던 진보세력들이 여성운동까지 통틀어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의 향상을 이끌었지만, 정작 이들조차도 내부적으로 가부장주의와 성추행, 성차별, 성적 [[대상화]]가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 멀지 않게도, 허핑턴포스트가 민중총궐기 관련 취재를 할 때, 시위에 참여한 진보 여대생들에 대해 민중총궐기 관계자들이 "우리 전야제의 꽃"이라고 소개했던 것을 문제시한 포스트잇을 촬영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여성들에게는 "더 중요한" 다른 운동들이 성공하면 그 다음에 여성 인권을 챙겨주겠다고 약속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퀴어 운동으로 흔히 대변되는 오늘날의 진보세력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들의 호응을 쉽게 얻지 못하고 불신을 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원로 여성운동가 [[오세라비]]는 [[리얼뉴스]]에 '[[http://realnews.co.kr/archives/13250|페미니즘 정체성 정치를 말하다]]'라는 글을 기고해 진보정치가 페미니즘에 끌려다니는 현상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앞서 '[[정체성 정치]]'를 비판한 마크 릴라의 저서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의 내용을 바탕으로 페미니즘 정체성 정치를 비판한 콘텐츠도 [[루리웹]], [[딴지일보]], [[오늘의유머]] 등 친문 성향 사이트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중이다. [[http://naver.me/GKOdjmT0|남성혐오로 점철된 '페미니즘 정체성 정치']] 종합하자면, 외국은 물론이고 한국 역시 페미나치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페미니스트의 대외적 이미지와 평판은 날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상술한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한 비판은 논리적 오류로, 비슷한 예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행한 만행으로 인해 나치와 비교되자 스스로 나치 피해자 운운한 것과 같다고 이해하면 된다. "과거 페미니즘이 나치에게 탄압을 받은 사실"과 "현재의 과격 페미니즘의 비판"은 서로 별개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페미니스트가 무슨 독일 나치당 당원이었거나 나치와 직접적 연관이 있어서 페미나치라고 불리는 것일 리가 없다. 페미니즘이 보여주는 문제점이 파시스트들의 인종차별주의와 비슷하기 때문에 비유되는 것에 불과하다. 설령 페미니스트들이 과거에 반 파시즘 투쟁을 했다 한들, 그들이 정작 현재 보여주는 행보가 파시즘적인 것이라면 그들을 나치에 비유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 "'''[[파시즘]]을 정의하는 말의 개수는 그것을 정의하는 학자들의 수와 같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는 만큼, 파시즘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모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극우이면서 파시즘이었던 사람에는 '''[[아돌프 히틀러]]'''와 '''[[베니토 무솔리니]]'''가 있었고 극좌이면서 파시즘에 가까웠던 사람에는 '''[[이오시프 스탈린]]'''과 '''[[김일성]]'''등이 있었다. 한마디로 정치적 스펙트럼과는 구별된다는 이야기.] 페미나치가 나치와 비교되는 건, 바로 이것들이 전부 '[[정체성 정치]]'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모든 형태의 '정체성 정치'는 암묵적으로 자신들이 "세상을 좀 더 나아지게 할" 자질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사악한 "타자"에 의해 억압 받고 있고, 이들을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척결"하고, "우리들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상향"을 만들자는 주장을 가지고 있다. 그 정체가 나치는 [[게르만족|독일 민족]], [[공산주의]]는 [[노동자]], 페미나치는 여성들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들의 정치적 수사는 서로 유사하며, 이들이 정치집단화되고 타인들에게 적대감을 보이며 정치권력을 손에 쥐면 다른 정체성 집단에 대한 탄압으로 폭주한다는 것까지도 유사하다. [[나치]]가 [[아리아인]]의 우월주의를 내세운 것처럼 페미니즘 또한 [[여성우월주의]]화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민족]]과 [[성별]]이라는 후천적으로 달라질 수 없는 생득적인 요소로 사람을 구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극단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저지르는 가장 심각한 오류로는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혐오인 [[TERF]]를 꼽을 수 있다. 그 외에도 페미나치들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집단의 이기주의를 위해 [[젠더퀴어|수많은 성적 정체성]]들을 무시하고 [[젠더이분법]]을 주장함으로써 [[여성학]]의 상위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젠더학]]을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한편, 좌파 담론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여성주의]]나 [[생태주의]] 같은 것들은 자신들의 개별 주제에 매몰되어 [[무산계급]]의 실존적 고통은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다른 좌파들은 이러한 페미나치들과 같은 진영으로 엮이는 것을 기분나빠 한다. 꼭 상술한 트렌스젠더나 젠더퀴어 같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더라도, 헤테로섹슈얼 남성들 또한 단지 '''사회적 다수자'''나 '''젠더 권력자'''라는 이유만으로 페미나치에 의해 '''고통을 무시당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절대로 [[성평등]]과 동의어가 아니며 페미니즘의 배타적인 행태는 오히려 대중들을 분열시키고 여성을 타자화하는 데 일조할 뿐이다. 이들은 간혹 모든 페미니스트가 [[TERF]]인 것은 아니며 선진국 전문직 여성과 후진국 하위층 여성의 차이를 분석하는 페미니즘도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과격파들은 온건파에게 '''스까페미''', [[흉자]] 등의 비난을 퍼붓고 있으며, 온건파들은 온갖 비난을 당하면서도 밥그릇을 지키고 세력을 불리기 위해서 과격파를 과감하게 저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진짜-가짜 페미니즘의 구분은 무의미하다'''라거나, '''10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0개의 페미니즘이 있다''' 라고 주장한 것은 바로 '''페미니스트들 자기 자신'''이다. 결코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일부 이단]]의 잘못으로 전체를 매도하려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온건파 페미니스트들은 [[그 개새끼는 우리 개새끼]]같은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페미니즘은 일체의 목표의식을 상실하고 존재 그 자체만을 위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결국 온건파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여성+주의]]'''라는 이름과 젠더 이분법적인 배타성을 내려놓아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나, 과연 앞으로 그렇게 될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그 나치 중에서도 [[그레고어 슈트라서]] 등 나치 좌파와 [[헤르만 괴링]], 카를 베터 등 단순 기회주의자일 뿐이었지 반인권적 행보는 약했던 당원들도 분명히 있었다. 현재 한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행태를 보이는 이들에게 주로 사용되고 있다. * 잘못된 근거를 통한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 반대의견이나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 반대의견을 내면 의견 자체에 반박하지 않고 차별이라고 뭉뚱그려서 비난한다. * [[성차별]]의 폐해를 공권력을 동원하여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남성차별에 대해 어떠한 목소리도 피드백도 기대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 대중매체에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여성과의 관련성이 부족한 사건이나 실화를 다룰 때 무턱대고 성차별이라 주장한다.[* 쉽게 말해 '''여자가 주목을 받지 못하면 [[여성혐오]]'''라는 주장이다. 실제 사례를 들자면, [[택시운전사]]에 여성 출연자의 비중이 적고 남성의 활동만 부각되고 주목된다는 이유로 [[트위터]] 등지에서 '[[알탕]] [[영화]]'라며 보이콧 활동이 잠시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물론, 어거지같은 논리라서 공공연하게 비판받고 없던 일이 되었지만...] * 같은 여성조차도 자신들에게 '완전히 동의하고 복종'하지 않으면 안티페미니즘, 가부장제에 찌든 성차별주의자로 매도한다. 여성 인권과 관련된 세계적으로 중대하고 절박한 문제(신생아 여아 살해나 여성 성기 절제 같은)에만 이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개개인의 가치관이나 취향에까지 적용해서 궁극적으로는 '''다른 여성들을 지배하려고 한다'''.[* 사실 현재 대한민국의 주류 페미니즘의 지향점은 여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여성을 '남성의 지배'에서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배권을 자신들이 갖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여성이 성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자립적으로 사고하고 선택할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며, 모든 여성에게 오직 자신들이 지정한 논리 안에서 여성이라는 성별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피해의식을 기반으로 행동하기를 강요한다.] 성차별의 폐해를 법 등의 공권력을 동원하여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언뜻 듣기에 나쁘지 않은 것처럼 들릴지 몰라도 무분별한 공권력의 확대, 즉 [[경찰국가]]로 향하는 것을 옹호하는 발언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성차별의 모든 측면이 법적으로 단정지어질 수 없는 것임을 생각하면 이 주장의 한계가 더욱 명확하다. 일례로 개인이 수치심을 느끼는 범위는 개인에 따라 몹시 다른데, 이에 대해 경직된 잣대를 작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또한 페미나치라는 비판에 있어 중요한 네 번째 서술의 문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여성이 지금까지 여러 분야에서 차별을 받아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차별]]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자신의 정치적/사상적 성향으로 인해 어느 하나의 사실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태도다. 같은 원리로 역차별(여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차별; 국방의 의무 외에도 [[근로기준법]] 제72조 등이 있다)을 애써 외면하는 것 또한 잘못된 태도다. 특히 한국에는 [[징병제]]를 [[대한민국의 병역의무|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소수의 장애인이나 질병을 가진 이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남성'만 징병의 대상이 된다.] 두 성별간에 서로 이해할 수 없는 피해에 대한 인식 차이가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커서 이러한 차별/역차별의 문제는 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오죽하면 의무도 평등해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를 짧게 압축하자면, '''권리만을 달라고 할 게 아니라 주어지지 않은 의무를 양심적으로 찾아서 달라고 해야 올바르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타인이 느끼는 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만큼이나 타인도 고통스러울 수 있으며, 이를 자신만의 편견과 잣대만으로 해석하려 하는 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